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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그 유일한 실체

행복한부자선미 2022. 7. 16. 14:55

오늘 밤 여러분은 실생활에 굉장히 유용한 것들을 배우게 될 겁니다.
이 수업에 오신 분들 모두, 원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그림 하나씩을 마음속에 지니고 오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주,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되는 강의동 안 여러분의 꿈을 실현하는 기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이 강의를 통해 커다란 이득을 얻게 될 겁니다.

우선 말해 둘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은 이전에 살았던 어떤 사람들이나 지구상에 일어났던 어떤 일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고대에 성경을 쓴 사람들은 역사를 쓴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기본적인 법칙에 역사라는 옷을 입힌 채 우화적인 형태로 교훈을 전달했던 겁니다.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대중들에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잘 믿는 대중들에게 우화의 형식을 빌려서 써 내려갔던 것입니다. 수 세기 동안 우리는 인격화시킨 것을 하나의 인격체로 오해했습니다. 그리고 우화를 역사로, 교훈을 전달하는 도구들을 교훈 자체로, 겉으로 드러난 내용을 궁극적인 의미로 오해했습니다.

옥수수 알갱이 하나와 그 알갱이 안에 담겨있는 생명의 본질의 차이만큼이나 성경의 외형적인 측면과 그 속에 담긴 진정한 뜻과의 격차는 굉장히 큽니다. 우리 몸의 소화기관은 몸에 흡수돼야 할 음식과 배출해야 할 음식들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직관적인 능력도 깨어난다면 소화기관처럼 성경의 우화와 비유 밑에 깔린, 마음에 관련된 생명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이 계속 일깨워지면, 우리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성경의 외관을 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역사적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무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오늘 이 강의는 성경의 이야기를 가지고 마음에 관련된 유용한 해석을 내는 자리이기 때문에,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오늘 밤 네 가지 이야기를 성경 속에서 뽑아, 고대에 성경을 썼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대의 스승들은 마음에 관련된 진리를 남근숭배 사상과 태양에 관련된 우화를 통해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현대 과학자들이 아는 것만큼 인체의 구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고 현대 천문학자들이 아는 것만큼 하늘에 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고대의 스승들은 그런 것에 대해 거의 알지는 못했지만, 현명하게 그것들을 이용해서 그들이 발견한 마음에 관련된 위대한 지혜를 남근숭배 사상과 천체의 구조 속에 맞추어서 표현했습니다.

남근숭배사상은 구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근 숭배사상, 그 자체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로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성경 속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실생활에 유용한 마음에 관련된 해석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성경 속의 두 가지 걸출한 이름을 먼저 보겠습니다.

하나는 하느님(GOD) 또는 여호와(Jehovah)로 번역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을 지칭할 때 쓰는 예수(Jesus) 라는 이름입니다. 고대인들은 약간의 상징들을 사용해 이 이름들을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어라고 불리는 고대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을 위해서 고안된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발음할 수 없는 신비로운 언어입니다. 수학자들이 더 높은 수학의 상징들을 이해했던 것처럼, 히브리어를 이해했던 사람들은 더 높은 히브리 언어의 상징들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영어가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과 달리, 히브리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욧 헤 바 헤(JOD HE VAU HE)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해서 이 상징들을 설명하겠습니다.

신의 이름 중에서 첫 번째 문자인  욧(JOD)은 손 또는 씨앗을 말합니다. 그냥 손이 아니라 창조자의 손입니다. 만약에 창조자와 그가 창조한 세상을 구분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인간의 신체 기관 중에 고르자면, 그것은 바로 손이 될 겁니다. 유인원에게 있는 손과는 다릅니다. 유인원의 손은 음식을 먹을 때나 나무를 타기 위한 목적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손은 무언가를 만들고 어떤 형상을 짓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손이 없다면 진정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지칭하는 손은 만들어내는 자의 손이자 창조자의 손입니다. 이손은 세상 속에서 만들 것을 정하고형상을 짓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 성경을 쓴 사람들은 첫 번째 문자 욧(JOD)을 일컬어 손 또는 모든 창조물들이 태어나는 궁극적인 씨앗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문자인 헤(HE)로 넘어가보면, 고대인들은 헤(HE)에 창문의 상징을 주었습니다. 창문은 눈입니다. 인간의 몸에는 눈이 있는 것처럼, 집에는 창문이 있습니다.

세 번째 문자인 바(VAU)에는 못의 상징을 주었습니다. 못은 물건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접속사"AND(그리고)"는 세 번째 문자인 바(VAU)로 씁니다. 만약에 "남자와 여자"라고 말하고 싶다면, 가운데에 바(VAU)를 넣어서 두개의 단어를 연결합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문자인 헤(HE)는 또 다른 창문 또는 눈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것들을 설명한다면 눈이며 창문이며 손 등의 방금 설명했던 방식은 잊고,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 첫 번째 문자인 욧(JOD)은 여러분의 인식인 IAMness 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것은 첫번째 문자입니다. 이 인식으로부터 인식하고 있는 모든 상태들이 나옵니다. 눈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문자인 헤(HE)는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무언가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인 마음속에 상()을 그리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자신 이외의 어떤 것을 상상하거나 인지합니다. 여러분이 생각 속에 푹 빠져 있을 때에도 생각하는 자인 여러분 자신과 생각하고 있는 대상들이 구분된 존재로서 존재합니다. 세 번째 문자인 바(VAU)는 그렇게 생각한 대상을 나라고 느끼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존재가 이미 되었다고 느낄 때, 바로 그 존재를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원하는 모습이 이미 된 것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한다면 상상의 세계에서 원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그것에 바(VAU)를 끼워 넣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창조의 드라마가 완성됐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무언가를 인식하고 나서는, 실제로 이미 그 모습이 됐다고 인식했습니다.

신의 이름 중에 마지막인 네 번째 문자는 또 다른 눈인, 헤(HE)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을 눈에 보이는 외부적인 세상 속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외부적인 세상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이라고 인식한 것에 맞춰, 외부적인 세상은 항상 스스로를 건설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욧 헤 바 헤(JOD HE VAU HE)는 만물이 창조되는 이름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어떤 창조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이름은 지금 여러분이 여기 앉아 있는 동안에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존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정말 그렇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지금 자신 이외의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방이나 가구나 다른 사람들 같은 것 말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기를 원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소유하기를 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모습이 되기를 원할 때, 여러분에게는 이미 그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때, 신의 이름인 욧 헤 바 헤(JOD HE VAU HE)를 완성합니다. 마음속의 영상이 현실로 드러나는 일은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미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눈앞에 나타납니다.